
20세기 축구 GOAT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그 대답은 거의 예외 없이 두 이름으로 압축됩니다: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 이들의 라이벌 관계는 단순한 기록 경쟁을 넘어, 축구라는 스포츠가 추구하는 두 가지 상반된 이상향의 충돌과도 같습니다. 펠레가 완벽한 기술과 압도적인 커리어로 ‘왕(O Rei)’의 자리에 올랐다면, 마라도나는 신에 가까운 재능과 인간적인 결함으로 ‘신(D10S)’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 논쟁은 감성과 단편적인 기억에 의존해왔습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우리는 방대한 데이터와 현대적인 분석 프레임을 통해 이 위대한 논쟁을 보다 객관적이고 다각적으로 조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단순히 ‘누가 더 뛰어난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두 선수가 축구 역사에 남긴 유산의 본질을 파헤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1. 숫자가 말해주는 진실: 커리어 통계 비교 분석
모든 위대한 논쟁의 시작은 객관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검증된 공식 기록만으로도 두 선수의 위대함을 비교 분석하는 데는 충분한 근거를 제공합니다.
클럽과 국가대표팀 기록
항목 | 펠레 | 디에고 마라도나 |
---|---|---|
총 공식 클럽 득점 | 680+ 골 | 300+ 골 |
산투스/나폴리 주요 클럽 득점 | 643골 (산투스) | 115골 (나폴리) |
국가대표 득점 | 77골 | 34골 |
국가대표 출전 | 92경기 | 91경기 |
국가대표 경기당 득점률 | 0.84 | 0.37 |
월드컵 무대에서의 활약
항목 | 펠레 | 디에고 마라도나 |
---|---|---|
월드컵 참가 횟수 | 4회 | 4회 |
월드컵 출전 경기 수 | 14경기 | 21경기 |
월드컵 득점 | 12골 | 8골 |
월드컵 경기당 득점률 | 0.86 | 0.38 |
월드컵 우승 횟수 | 3회 (1958, 1962, 1970) | 1회 (1986) |
주요 수상 경력
펠레 주요 수상 내역 | 디에고 마라도나 주요 수상 내역 |
---|---|
FIFA 월드컵 우승 (3회) | FIFA 월드컵 우승 (1회) |
캄페오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 (6회) | 이탈리아 세리에 A (2회)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2회) | UEFA 컵 (1회) |
인터컨티넨탈 컵 (2회) | 코파 이탈리아 (1회) |
IOC 세기의 운동선수 (1999) | FIFA 월드컵 골든볼 (1986) |
FIFA 세기의 선수 (공동 수상, 2000) | FIFA 세기의 선수 (공동 수상, 2000) |
2. 필드 위의 예술가: 플레이 스타일과 전술적 역할
펠레: 완성형 공격수의 교과서
펠레는 현대 축구에서 요구하는 공격수의 모든 능력을 갖춘 선수였습니다.
- 완벽한 양발 사용: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고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을 구사했습니다.
- 신체 능력과 제공권: 엄청난 점프력과 균형 감각으로 ‘공중의 마법’을 선보였습니다.
- 플레이메이킹 능력: 월드컵에서만 10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이 부문 역대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 전술적 역할: 브라질의 4-2-4 포메이션에서 인사이드 포워드 또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현대 축구의 ’10번’ 역할의 원형을 제시했습니다.
마라도나: 예측 불가능한 천재, ‘엔간체’
마라도나는 정형화된 틀에 가둘 수 없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전술인 선수였습니다.
- 드리블과 볼 컨트롤: 낮은 무게중심과 폭발적인 순간 속도를 이용한 그의 드리블은 수비수들에게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 창의성과 비전: 경기장을 읽는 비전과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창의적인 플레이가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 전술적 역할 ‘엔간체(Enganche)’: 아르헨티나의 3-5-2 포메이션 안에서 절대적인 자유를 부여받고 경기장 전역을 누비며 공격의 템포를 조절하고 경기를 지배했습니다.
3. 역사를 만든 순간들: 상징적 장면 재조명
펠레의 신화: 1958년과 1970년 월드컵
1958년 월드컵 결승전 vs 스웨덴: 17세의 펠레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가슴으로 공을 트래핑한 후, 수비수 머리 위로 공을 넘기는 ‘솜브레로’ 기술을 선보였고, 지체 없이 발리슛으로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이 장면은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 중 하나로, 새로운 ‘왕’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970년 월드컵 결승전 vs 이탈리아: 경기 막판, 펠레는 오른쪽으로 쇄도하던 주장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에게 보지도 않고 완벽하게 연결하는 패스를 건넸습니다. 이 패스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 골의 화룡점정이었으며, 개인의 기량을 넘어 팀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그의 축구 지능을 완벽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마라도나의 서사: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신의 손 (Hand of God)’: 잉글랜드와의 8강전, 마라도나는 손을 사용해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이 골은 단순한 오심을 넘어,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배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상징적인 복수’로 받아들여지며 신화가 되었습니다. 이는 규칙을 초월하는 그의 반항적이고 교활한 천재성을 상징합니다.
‘세기의 골 (Goal of the Century)’: 불과 4분 뒤, 마라도나는 자기 진영에서 공을 잡아 약 68미터를 돌파하며 5명의 잉글랜드 선수를 제치고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이 골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신에 가까운 그의 개인 기량을 증명하는 장면이었습니다.
4. 팀을 넘어서: 동료와 리그의 수준
펠레의 브라질 vs.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펠레가 활약했던 1958, 1962, 1970년의 브라질 대표팀은 가힌샤, 히벨리누, 자이르지뉴 등 축구사를 빛낸 전설적인 선수들로 가득한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였습니다. 반면, 마라도나가 우승을 이끈 1986년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그를 제외하면 세계적인 스타가 즐비한 팀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마라도나는 198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기록한 14골 중 10골(5골 5어시스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한 선수가 팀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최대치를 보여주었습니다.
리그 경쟁력 비교: 60년대 브라질 리그 vs. 80년대 세리에 A
펠레 시대의 브라질 리그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며, 그의 소속팀 산투스는 유럽 챔피언을 꺾고 세계 최강 클럽임을 증명했습니다. 반면, 1980년대 이탈리아 세리에 A는 ‘축구의 전쟁터’로 불릴 만큼 역사상 가장 수비적으로 견고한 리그였습니다. 마라도나는 이러한 환경에서 약팀 나폴리를 이끌고 두 번이나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5. 축구를 넘어선 아이콘: 문화적 영향력과 유산
펠레: 평화의 상징, 축구의 세계화
펠레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전 세계에 알린 최초의 글로벌 슈퍼스타였습니다.
- 전쟁을 멈춘 사나이: 1969년 나이지리아 내전 중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48시간의 휴전이 이루어졌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 브라질의 국보: 브라질 정부가 그를 ‘국보’로 지정하여 유럽 이적을 막았습니다.
- 축구 외교관: 북미 축구의 인기를 견인하고 유네스코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축구를 통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마라도나: 반항의 아이콘, 나폴리의 신
마라도나는 기득권에 저항하는 반항의 상징이자, 소외된 이들의 희망을 대변하는 존재였습니다.
- 나폴리의 구세주: 이탈리아 남부 도시 나폴리에 역사상 첫 리그 우승을 안기며 도시 전체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았습니다.
- 반(反)제국주의의 상징: ‘신의 손’ 골은 포클랜드 전쟁 패배에 대한 상징적인 복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체제 비판가: 평생에 걸쳐 FIFA와 같은 거대 권력 기관을 비판하며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습니다.
6. 거인들의 시선: 동시대 선수들의 평가
요한 크루이프: “펠레는 논리의 경계를 넘어선 유일한 축구선수.”
프란츠 베켄바워: “펠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다. 그와 비교할 선수는 아무도 없다.”
펠레의 마라도나 평가: “마라도나는 위대한 선수였지만, 헤딩을 잘하지 못했고 오른발을 쓰지 못했다.”
마라도나의 펠레 평가: “사람들이 투표했다면 역대 최고의 선수는 논쟁의 여지없이 나였을 것.”
결론: 왕과 신, 두 개의 정상 – 2025년의 최종 판결
이 모든 분석 끝에 하나의 명확한 승자를 선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무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두 선수가 서로 다른 형태의 위대함을 상징하는 두 개의 거대한 봉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왕(The King)’, 펠레
그는 완벽함의 상징이자 축구라는 스포츠가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기준점이었습니다. 세 번의 월드컵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달성했으며, 경기장 안팎에서 흠결 없는 모습으로 축구를 ‘아름다운 게임’으로 전 세계에 알린 최초의 글로벌 대사였습니다. 그는 축구라는 왕국의 질서를 완성하고 그 정점에서 군림한 ‘왕’이었습니다.
‘신(D10S)’, 마라도나
그는 예측 불가능한 천재성이 빚어낸 예술 그 자체였습니다. 신기에 가까운 드리블과 창의성으로 평범한 팀을 세계 정상으로 이끄는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그의 삶은 영광과 오욕이 뒤섞인 한 편의 드라마였고, 팬들은 그의 인간적인 결함까지도 사랑하며 그를 ‘신’의 반열에 올렸습니다.
결국 펠레와 마라도나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위대함에 더 큰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꾸준함과 완벽함으로 시대를 지배한 왕을 존경할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함 속에서 신적인 순간을 창조해낸 혁명가에게 열광할 것인가. 이 논쟁에 명확한 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논쟁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두 선수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명은 세상을 뒤흔드는 번개와 같았습니다. 축구의 역사는 이 두 거인이 남긴 빛과 흔적을 따라 영원히 흘러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