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 2025
판바스텐바조

80후반-90초반 세리에 A GOAT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세계 축구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 세리에 A에는 두 명의 위대한 공격수가 존재했습니다. 한 명은 완벽한 기술과 우아함으로 그라운드를 지배한 ‘위트레흐트의 백조’, 마르코 반 바스텐. 다른 한 명은 예측 불가능한 창의성과 신성한 아우라로 팬들을 매료시킨 ‘신성한 말총머리’, 로베르토 바조.

이들의 우열을 가리는 논쟁은 축구계의 가장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입니다. 압도적인 기록으로 시대를 정의하는 것이 위대함인가, 아니면 가장 중요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예술적인 플레이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위대함인가? 2025년의 시점에서 두 전설의 커리어 전체를 조망하며, 그들의 플레이 스타일, 커리어의 명암, 그리고 축구사에 남긴 유산을 심층적으로 해부하고자 합니다.


1. 플레이 스타일 분석: 완성형 공격수 vs. 창조의 마법사

반 바스텐: 현대 스트라이커의 교과서

마르코 반 바스텐의 플레이는 ‘완성형’이라는 단어로 요약됩니다. 그는 현대 스트라이커가 갖춰야 할 모든 능력을 최고 수준으로 겸비한 선수였습니다.

  • 지능과 움직임: 수비수보다 한발 앞서 공간을 예측하고 침투하는 지능적인 움직임이 최대 무기였습니다.
  • 완벽한 기술과 양발 사용: 188cm의 장신임에도 발레리노처럼 우아한 볼 컨트롤과 오른발, 왼발, 머리를 가리지 않는 완벽한 피니싱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 골 결정력의 화신: 아약스에서 리그 133경기 128골, AC 밀란에서 201경기 125골이라는 수치는 그의 이름 앞에 왜 ‘킬러’라는 수식어가 붙는지 보여줍니다.

바조: 예측 불가능한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는 시스템이나 전술로 규정할 수 없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그라운드 위의 예술가이자 마법사였으며, 그의 발끝에서 펼쳐지는 플레이는 축구의 낭만 그 자체였습니다.

  • 판타지스타와 트레콰르티스타: 단순히 골을 넣는 것을 넘어, 예측 불가능한 창의성으로 공격 전체를 지휘하는 ‘판타지스타’의 대명사였습니다.
  • 드리블과 창의성: 무게 중심이 낮고 민첩했으며, 수비수 여러 명을 무너뜨리는 환상적인 드리블에 능했습니다. 1990년 월드컵 체코슬로바키아전의 경이로운 드리블 돌파 골은 그의 천재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 비전과 킬러 패스: 골을 넣는 능력만큼이나 동료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주는 패스에도 능했습니다.

2. 커리어 기록 비교: 숫자가 말해주는 위대함

커리어 통산 스탯 비교

선수대회출전득점도움경기당 득점률
마르코 반 바스텐모든 공식 경기373277890.74
네덜란드 대표팀58240.41
로베르토 바조모든 공식 경기6052771520.46
이탈리아 대표팀56270.48

주요 우승 및 개인 수상 내역

수상 내역마르코 반 바스텐로베르토 바조
발롱도르3회 (1988, 1989, 1992)1회 (1993)
FIFA 올해의 선수1회 (1992)1회 (1993)
유러피언컵/챔피언스리그2회0회
UEFA 컵0회1회
세리에 A 우승3회2회
세리에 A 득점왕2회0회

3. 국가대표 커리어: 오렌지 군단과 아주리 군단의 심장

반 바스텐: 유로 1988의 정점과 그 이후

반 바스텐의 국가대표 커리어는 유로 1988이라는 단 하나의 대회로 영원히 기억됩니다.

소련과의 결승전에서 터뜨린,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 중 하나로 평가받는 ‘불가능한 각도’의 발리슛은 네덜란드에 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안겼습니다. 이 대회에서 그는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석권하며 명실상부한 대회 최고의 스타로 빛났습니다.

바조: 1994년 월드컵, 영웅과 비극 사이

로베르토 바조의 아주리 군단 커리어는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와 같습니다. 특히 1994년 미국 월드컵은 그의 모든 것을 보여준 무대였습니다. 그는 혼자의 힘으로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영웅 서사는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브라질과의 결승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나선 그의 슛이 허공을 가르면서 이탈리아의 우승 꿈도 함께 날아갔습니다. 월드컵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남은 이 순간에 대해 바조는 훗날 “그 순간 나는 내 안에서 죽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회고했습니다.


4. 커리어의 명과 암: 엇갈린 운명

반 바스텐: 부상으로 너무 일찍 꺾인 날개

반 바스텐의 커리어는 축구계에서 가장 안타까운 ‘가정’ 중 하나를 남겼습니다. 선수 생활 내내 고질적인 발목 부상에 시달렸던 그는, 1995년 불과 28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하며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습니다.

바조: 감독과의 불화, 저니맨의 길

바조의 커리어는 그의 천재성만큼이나 감독들과의 끊임없는 불화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의 자유분방한 플레이 스타일은 조직력을 중시하는 아리고 사키, 마르첼로 리피와 같은 감독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유벤투스, AC 밀란, 인테르 밀란 등 빅클럽을 전전하는 ‘저니맨’ 신세가 되었습니다.


결론: 시대를 초월한 두 천재, 축구사에 남긴 유산

마르코 반 바스텐과 로베르토 바조, 두 선수를 단순히 ‘누가 더 위대한가’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축구의 정점에 도달했으며, 축구사에 서로 다른 색깔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반 바스텐: ‘완벽함’의 상징

그는 현대 스트라이커가 갖춰야 할 모든 덕목—골 결정력, 지능, 기술, 피지컬—을 최고 수준으로 구현했습니다. 그의 유산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같은 현대의 ‘컴플리트 포워드’들에게서 명확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축구의 ‘과학’을 완성한 선수였습니다.

바조: ‘예술’과 ‘낭만’의 상징

그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감동과 예측 불가능한 플레이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의 축구는 승패를 넘어선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상징적인 존재이자, 시스템이 감히 통제할 수 없었던 개인의 천재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증명한 선수였습니다.

2025년의 시선으로 두 전설을 돌아볼 때, 우리는 한 명을 통해 스트라이커 포지션의 진화를 목격하고, 다른 한 명을 통해 축구가 왜 ‘아름다운 게임’이라 불리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한 명은 축구의 ‘과학’을, 다른 한 명은 축구의 ‘예술’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축구는 그 둘 모두를 필요로 하기에, 두 전설의 이름은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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