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 2025
가린샤자이르지뉴

브라질 오른쪽 측면의 GOAT는?

축구의 역사에서 브라질의 오른쪽 측면만큼 신화적인 공간은 드물다. 그리고 그 공간을 지배했던 두 명의 이름, 가린샤와 자이르지뉴는 단순한 선수를 넘어 브라질 축구의 영혼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남아있다. 이들의 관계는 더욱 특별하다. 가린샤는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예술 축구의 마스터였고, 자이르지뉴는 그를 우상으로 삼아 그의 자리를 물려받은 후계자였다.

가린샤는 ‘사람들의 기쁨(Alegria do Povo)’이라는 별명처럼 예측 불가능한 드리블과 순수한 즐거움으로 축구의 본질을 보여준 예술가였습니다. 반면 자이르지뉴는 ‘월드컵의 허리케인(Furacão da Copa)’으로 불리며, 압도적인 힘과 속도, 그리고 파괴적인 결정력으로 새로운 시대의 공격수 상을 제시했습니다. 이 글은 2025년의 관점에서 두 전설의 플레이 스타일, 커리어, 그리고 그들이 남긴 유산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위대함에 도달한 두 거인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1. 신체와 스타일: ‘삐딱한 다리의 천사’ vs. ‘월드컵의 허리케인’

가린샤: ‘결함’을 예술로 승화시킨 천재

가린샤의 신체는 축구 선수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척추가 휘어 있었고, 양쪽 다리의 길이가 6cm나 차이 났습니다. 의사들은 그가 프로 운동선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이러니 중 하나는, 바로 이 신체적 ‘결함’이 가린샤를 막을 수 없는 선수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그의 휘어진 다리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무게 중심과 독특한 스텝을 만들어냈고, 이는 수비수들이 그의 움직임을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드리블은 정형화된 훈련의 산물이 아닌 순수한 즉흥 연주와 같았으며, 관중들은 그의 플레이에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올레(Olé)!”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자이르지뉴: 힘과 속도의 파괴자

자이르지뉴는 가린샤와는 정반대의 신체적 프로필을 가졌습니다. 다부진 근육질 몸매를 자랑했던 그는 당대 최고의 운동선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폭발적인 가속력과 엄청난 스피드, 그리고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을 가볍게 이겨내는 압도적인 피지컬이었습니다.

그의 플레이는 가린샤처럼 예술적인 드리블보다는 직선적이고 파괴적인 돌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는 윙어의 스피드와 스트라이커의 파워 및 결정력을 결합했습니다. 이는 수십 년 후 현대 축구를 지배하게 될 ‘윙포워드’ 또는 ‘인사이드 포워드’의 원형과도 같았습니다.


2. 월드컵에서의 활약: 신화를 쓴 두 번의 정점

가린샤: 1958년의 조력자, 1962년의 절대자

  • 1958년 스웨덴 월드컵: 펠레와 함께 처음 출전한 이 대회에서 그는 결승전 어시스트 2개를 포함한 맹활약으로 브라질의 첫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 1962년 칠레 월드컵: 이 대회는 온전히 ‘가린샤의 월드컵’이었습니다. 에이스 펠레가 부상으로 쓰러지자, 그는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내고 팀의 절대적인 리더로 거듭나 8강과 4강에서 연속 멀티골을 터뜨리며 조국에 2회 연속 우승을 안겼습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월드컵, 골든볼(MVP), 골든부트(득점왕)를 동시에 석권한 역사상 최초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자이르지뉴: 1970년, 완벽한 토너먼트의 주인공

자이르지뉴의 월드컵 신화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쓰였습니다. 그는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 바로 월드컵 본선 전 경기 득점이라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6경기에 출전하여 총 7골을 터뜨린 그의 활약은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으로 꼽히는 1970년 브라질 대표팀의 화룡점정이었습니다.

월드컵 임팩트 비교

항목가린샤 (1958 & 1962)자이르지뉴 (1970)
주요 역할1958년: 핵심 조력자, 1962년: 절대적 에이스완벽한 팀의 주 득점원
월드컵 우승2회 (1958, 1962)1회 (1970)
주요 개인 수상1962년 골든볼 (MVP), 1962년 골든부트 (득점왕)1970년 실버부트 (득점 2위)
특이사항펠레 부상 후 팀을 이끌고 우승월드컵 역사상 유일한 전 경기 득점

3. 클럽 커리어: 보타포구의 영광을 계승하다

가린샤: 보타포구의 상징, ‘사람들의 기쁨’

가린샤는 1953년부터 1965년까지 12년간 보타포구에서 활약하며 클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는 600경기에 가까운 경기에 출전해 230골 이상을 기록하며 클럽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자이르지뉴: 아이돌의 그림자를 넘어선 후계자

자이르지뉴의 보타포구 커리어는 자신의 우상인 가린샤의 그늘 아래서 시작되었습니다. 가린샤가 팀을 떠나자 그는 마침내 오른쪽 날개 자리를 차지하며 자신의 시대를 열었고, 1968년 팀을 전국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1976년에는 크루제이루 소속으로 남미 클럽 대항전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우승하며 클럽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4. 기록과 유산: 숫자로 보는 비교와 마지막 발자취

통계 및 수상 내역 비교 분석

항목가린샤자이르지뉴
주요 클럽보타포구보타포구, 크루제이루, 마르세유
클럽 통산 (추정)약 600경기 240골 이상약 525경기 249골
브라질 대표팀50경기 12골81경기 33골
월드컵 우승2회1회
주요 클럽 우승캄페오나투 카리오카 3회타사 브라지우 1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회
주요 개인 수상1962 월드컵 골든볼 & 골든부트1970 월드컵 실버부트, 1970 월드컵 올스타팀
20세기 선수 랭킹FIFA 세기의 선수 7위월드 사커 20세기 선수 27위

후대의 평가와 유산

  • 가린샤의 유산: ‘조고 보니투’의 화신 가린샤는 브라질 축구의 낭만적인 이상, 즉 ‘아름다운 축구’의 화신으로 기억됩니다. 그는 전술적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즐거움과 즉흥성, 예술성으로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그의 불행했던 사생활과 비극적인 말년은 그의 신화적인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 자이르지뉴의 유산: 위대한 팀의 위대한 공격수 자이르지뉴의 유산은 1970년 월드컵의 완벽함과 그의 깨지지 않는 대기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는 힘과 효율성, 그리고 승리의 상징으로 기억됩니다. 그는 당대 가장 압도적이고 효율적인 공격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결론: 시대의 아이콘, 영원한 전설

두 선수를 최종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브라질 축구의 두 가지 다른 얼굴, 즉 ‘심장’과 ‘머리’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린샤는 열정, 즐거움, 예술성, 그리고 아름다운 투쟁과 같은 브라질 축구의 ‘심장’을 상징합니다. 그는 ‘사람들의 기쁨’이었고, 그의 위대함은 감성적으로 느껴집니다.

반면 자이르지뉴는 전술적 진화, 신체 능력의 최적화, 그리고 승리 공식의 냉혹한 실행과 같은 브라질 축구의 ‘머리’를 대표합니다. 그는 ‘월드컵의 허리케인’이었고, 그의 위대함은 논리적, 통계적으로 이해됩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하나의 왕관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가 아니라, ‘조가 보니투’의 화려한 이중성을 함께 완성하는, 서로를 보완하는 영원한 두 개의 전설로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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