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L 감독의 GOAT는?
프리미어리그의 역사는 수많은 별들의 전쟁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 어떤 경쟁도 알렉스 퍼거슨과 아르센 벵거의 대결만큼 시대 자체를 정의하지는 못했습니다. 2025년, 그들의 마지막 터치라인 대결로부터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우리는 두 거장의 유산을 더욱 명확한 시선으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성공한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퍼거슨과 벵거는 현대 프리미어리그의 정체성을 조각한 설계자들이었고, 그들의 17년에 걸친 치열한 라이벌리는 잉글랜드 축구를 넘어 전 세계를 사로잡은 거대한 서사였습니다. 이 글은 두 거장의 모든 것을 비교 분석하며 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1. 정상으로 가는 두 개의 길
알렉스 퍼거슨: 강철의 의지로 올드 트래포드를 정복하다
알렉스 퍼거슨의 위대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을 이끌고 1983년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1986년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했을 때 맨유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낡은 유스 시스템을 개편하고 선수단의 기강을 잡으며 끈기 있게 장기적인 비전을 실행했고, 마침내 1992-93 시즌 26년 만의 리그 우승이라는 감격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며 위대한 왕조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아르센 벵거: 무명의 혁명가, 잉글랜드 축구를 바꾸다
아르센 벵거의 부임 전 경력은 퍼거슨처럼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만의 축구 철학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AS 모나코와 일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를 거치며 내공을 쌓았습니다.
1996년, 아스널이 무명의 프랑스인 감독 아르센 벵거를 선임했을 때, 잉글랜드 축구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아르센이 누구야?(Arsène Who?)”라는 헤드라인이 당시의 분위기를 대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임하자마자 음주 문화를 뿌리 뽑고 과학적인 훈련법과 영양 관리를 도입하는 조용한 혁명을 시작했고, 부임 후 첫 풀타임 시즌에 ‘더블’을 달성하며 자신의 방식이 옳았음을 압도적으로 증명했습니다.
2. 트로피와 기록으로 본 위업
주요 우승 트로피 비교
트로피 | 알렉스 퍼거슨 | 아르센 벵거 |
프리미어리그 | 13 | 3 |
FA컵 | 5 | 7 |
리그컵 | 4 | 0 |
UEFA 챔피언스리그 | 2 | 0 |
총계 (주요 대회) | 49 | 21 |
프리미어리그 통산 기록 비교
항목 | 알렉스 퍼거슨 | 아르센 벵거 |
총 경기 수 | 810 | 828 |
승리 | 528 | 476 |
득점 | 1,627 | 1,561 |
경기당 승점 | 2.16 | 1.96 |
승률 (%) | 65.2% | 57.5% |
개인 수상 내역 비교
수상 내역 | 알렉스 퍼거슨 | 아르센 벵거 |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 | 11 | 3 |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 27 | 15 |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 | 2023년 헌액 | 2023년 헌액 |
3. 철학과 전술의 대격돌
퍼거슨의 실용주의: 승리를 위한 모든 것
퍼거슨의 가장 위대한 전술적 능력은 특정 전술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에 있었습니다. 그는 ‘전술적 카멜레온’처럼 시대의 흐름과 상대에 맞춰 끊임없이 자신의 팀을 변화시켰습니다. 1990년대의 4-4-2, 2000년대 후반의 유기적인 4-3-3 등 26년의 재임 기간 동안 최소 4번의 각기 다른 스타일의 우승팀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유명한 ‘헤어드라이어’ 불호령과 언론을 이용한 심리전은 승리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한 그의 집념을 보여줍니다.
벵거의 이상주의: 축구는 예술이어야 한다
벵거에게 축구는 승리 이전에 예술이어야 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짧고 빠른 패스를 기반으로 한 점유율 축구 ‘벵거볼(Wengerball)’로 요약됩니다.
이 철학이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것이 바로 2003-04 시즌의 ‘인빈시블스(The Invincibles)’였습니다. 38경기 동안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한 이 업적은 벵거의 이상주의가 현실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습니다. 알렉스 퍼거슨조차 훗날 “그 업적은 다른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다”고 말하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라운드 밖에서는 과학적인 훈련법과 혁신적인 스카우팅 시스템으로 잉글랜드 축구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4. 그라운드 안팎의 전쟁, 라이벌리
‘올드 트래포드의 전투’와 ‘피자게이트’: 증오의 절정
두 감독의 적대감은 그라운드 위에서 폭발적인 사건들로 이어졌습니다. 2003년, 아스널 선수들이 맨유의 반 니스텔루이를 둘러싸고 조롱했던 ‘올드 트래포드의 전투’와, 1년 뒤 맨유가 아스널의 49경기 무패 행진을 저지한 후 터널에서 벌어진 ‘피자게이트’ 사건은 두 팀의 증오가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경쟁의 끝, 존중의 시작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놀랍게도 존중과 우정으로 변모했습니다. 퍼거슨은 은퇴 후 벵거를 “위대한 라이벌이자 동료, 그리고 친구”라고 칭했고, 벵거가 마지막으로 올드 트래포드를 방문했을 때는 직접 선물을 증정하며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5. 돈의 전쟁과 그 후의 유산
재정적 격변기 속 두 감독의 선택
1996년부터 2013년까지, 퍼거슨의 맨유는 선수 영입에 약 4억 8천만 파운드의 순지출을 기록한 반면, 벵거의 아스널은 약 1억 4천만 파운드의 순지출에 그쳤습니다. 퍼거슨은 승리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지 않았고, 벵거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설 이후 극도의 긴축 재정 속에서 팀을 운영해야 했습니다.
아스널이 호날두 영입 직전까지 갔다가 1,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주저한 사이, 맨유가 과감하게 그를 가로챈 일화는 재능을 알아보는 벵거의 ‘안목’과 결정적인 순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퍼거슨의 ‘실용주의’가 어떻게 다른 결과를 낳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거인의 그림자: 퍼거슨과 벵거 이후의 클럽들
두 감독이 떠난 후, 각 클럽은 거대한 공백에 휩싸였습니다. 퍼거슨 은퇴 이후 맨유는 10년간 16억 유로 이상을 썼지만 리그 우승은 없었고, 벵거가 떠난 아스널 역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는 두 감독의 영향력이 단순히 전술을 넘어, 클럽의 문화와 정체성 그 자체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방증합니다.
결론: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만약 승리의 기준을 트로피와 기록이라는 가장 명백한 잣대로만 잰다면, 승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알렉스 퍼거슨입니다. 그는 2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팀을 재건하며 최상위권의 경쟁력을 유지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축구라는 게임의 ‘마스터’였습니다.
하지만 축구의 역사가 단지 숫자로만 기록되지 않는다면, 아르센 벵거의 유산은 다른 차원에서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는 승리만큼이나 과정의 아름다움을 중요시했고, 축구에 과학과 예술을 접목시킨 혁명가였습니다. 퍼거슨이 게임을 마스터했다면, 벵거는 게임 자체를 바꾼 인물입니다.
어쩌면 진짜 승자는 프리미어리그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퍼거슨의 실용주의와 벵거의 이상주의가 충돌하며 만들어낸 불꽃은 잉글랜드 축구를 가장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콘텐츠로 만들었고, 프리미어리그를 오늘날의 글로벌 현상으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