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 2025
celtic and rangers

스코틀랜드 축구의 GOAT는?

세계 축구계에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올드 펌(Old Firm)’ 더비만큼 강렬하고, 복잡하며, 때로는 위험한 라이벌 관계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셀틱 FC와 레인저스 FC의 충돌은 단순한 90분간의 축구 경기가 아닙니다. 이는 1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종교, 정치, 국가 정체성, 그리고 사회 계급의 갈등이 축구라는 용광로 속에서 들끓어 온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입니다.

이 글은 2025년 현재를 기준으로, 두 클럽의 단기적인 성적을 넘어 이들의 라이벌리를 형성한 근원적인 토대, 즉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정체성, 그리고 각 클럽의 심장과 영혼을 대변해 온 불멸의 전설들을 깊이 파고들 것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왜 올드 펌이 단순한 더비를 넘어, 축구라는 스포츠가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격렬한 인간 드라마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1. 거인의 탄생: 상반된 기원

셀틱 FC: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망의 깃발

셀틱의 탄생 서사는 축구 클럽 역사상 가장 숭고하고 독특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1887년 11월 6일, 가톨릭 마리스트 수도회 수사인 월프리드 수사는 글래스고 동부의 가난에 허덕이는 아일랜드 이민자 공동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축구 클럽을 창단했습니다. ‘가난한 아이들의 저녁 식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된 것입니다.

클럽의 이름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문화의 공통된 뿌리를 상징하는 ‘셀틱’으로 정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축구팀을 넘어, 스코틀랜드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아일랜드 이민자들에게 자부심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레인저스 FC: 스코틀랜드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

셀틱의 탄생 배경과 달리, 레인저스의 시작은 순수한 축구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72년 3월, 네 명의 십 대 소년 모세 맥닐, 피터 맥닐, 피터 캠벨, 윌리엄 맥비스는 글래스고의 한 공원을 거닐며 축구 클럽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초창기 레인저스는 어떤 종교적, 정치적 이념과도 무관했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개신교, 연방주의 정체성은 셀틱의 등장 이후, 그리고 20세기 초 글래스고의 사회적, 정치적 환경 변화 속에서 라이벌에 대한 대척점으로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2. 신념의 충돌: 올드 펌의 문화와 정체성

녹색 물결: 셀틱의 아일랜드 민족주의와 가톨릭 유산

셀틱의 정체성은 ‘스코틀랜드 클럽이지만 아일랜드의 영혼을 가진’ 존재로 요약됩니다. 경기장에서는 아일랜드 삼색기가 휘날리고, “The Fields of Athenry”와 같은 아일랜드 민요나 때로는 아일랜드 독립을 노래하는 ‘레블 송’이 울려 퍼집니다. 팬들은 스스로를 ‘Bhoys'(아일랜드식 표기)라고 칭하며 클럽의 아일랜드 혈통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냅니다.

푸른 바다: 레인저스의 스코틀랜드 연방주의와 개신교 정체성

레인저스의 정체성은 셀틱의 그것과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그리고 영국 연방에 대한 충성심을 상징하는 연방주의의 아이콘입니다. 팬들은 스스로를 ‘The Gers’라 부르며, 경기장에서는 스코틀랜드 국기와 함께 유니언 잭이 펄럭입니다.


3. 성지(聖地)와 함성: 두 클럽의 심장

셀틱 파크와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 셀틱 파크: 1892년, 수많은 자원봉사자 팬들의 헌신적인 노동으로 건설되었으며,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유럽에서 가장 뜨거운 분위기를 자랑하는 경기장 중 하나입니다.
  •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1899년 개장했으며, 상징적인 붉은 벽돌의 메인 스탠드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 아치볼드 리치의 설계로 지어졌습니다. 두 번의 큰 참사를 딛고 영국에서 가장 현대적인 경기장 중 하나로 재탄생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탠드의 함성: 클럽의 상징가

  • 셀틱: 리버풀과 공유하는 “You’ll Never Walk Alone”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연대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일랜드의 역사를 담은 다양한 노래들이 불립니다.
  • 레인저스: 공식 앤섬인 “Follow Follow”는 클럽에 대한 팬들의 변함없는 충성심을 표현합니다. 티나 터너의 “Simply the Best” 역시 1990년대 황금기의 자신감을 상징하는 노래로 널리 불립니다.

4. 판테온: 클럽을 정의한 10인의 레전드

셀틱의 판테온

  1. 지미 존스톤 : ‘징키’. 2002년 팬 투표에서 ‘가장 위대한 셀틱 선수’로 선정된 불멸의 아이콘. 1967년 ‘리스본 라이온즈’의 핵심 멤버.
  2. 빌리 맥닐 : ‘세자르’. 셀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주장이자, 영국 클럽 최초로 유러피언컵을 들어 올린 캡틴.
  3. 헨릭 라르손 : ‘왕 중의 왕’. 7년간 315경기에서 242골을 기록한 스웨덴 출신의 골잡이. 2001년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
  4. 케니 달글리시 : 리버풀의 ‘킹 케니’가 되기 전, 이미 셀틱의 왕이었던 스코틀랜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
  5. 폴 맥스테이 : ‘마에스트로’. 1980-90년대 셀틱의 암흑기를 지킨 충성스러운 원클럽맨이자 주장.
  6. 지미 맥그로리 : ‘인간 어뢰’. 공식 경기 522골이라는, 영국 1부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한 전설.
  7. 대니 맥그레인 : 17년간 셀틱의 측면을 책임진 전설적인 풀백. 역경을 딛고 일어선 투지의 상징.
  8. 바비 레녹스 : ‘버즈 밤’. 리스본 라이온즈의 또 다른 핵심 멤버이자 클럽 역대 득점 2위.
  9. 팻시 갤러처 : ‘마이티 아톰’. 20세기 초 셀틱의 첫 위대한 스타. 공을 양발에 끼운 채 골라인으로 공중제비를 돌아 골을 넣은 전설로 유명.
  10. 스콧 브라운 : 현대의 아이콘. 주장으로서 ‘쿼드러플 트레블’을 포함, 10번의 리그 우승을 이끎.

레인저스의 판테온

  1. 존 그레이그 : 1999년 팬 투표에서 ‘가장 위대한 레인저스 선수’로 선정된, 클럽의 살아있는 상징. 1972년 컵 위너스컵 우승 당시 주장.
  2. 앨리 맥코이스트 : ‘슈퍼 앨리’. 클럽 역대 최다 득점자(355골). 10번의 리그 우승과 2회 연속 유러피언 골든슈 수상.
  3. 짐 백스터 : ‘슬림 짐’. 1960년대 스코틀랜드 최고의 축구 천재로 꼽히는 아티스트.
  4. 데이비 쿠퍼 : 12년간 레인저스의 왼쪽 측면을 지배한 마법사. 신이 내린 왼발을 가진 클래식 윙어.
  5. 샌디 자딘 : 16년간 활약한 전설적인 수비수. 클럽 역대 출장 2위. 그의 이름을 딴 ‘샌디 자딘 스탠드’가 아이브록스에 있음.
  6. 리처드 고프 : ‘9년 연속 우승’의 전설을 이끈 위대한 주장.
  7. 브라이언 라우드루프 : 1990년대 황금기에 화려함과 예술성을 더한 덴마크의 천재.
  8. 배리 퍼거슨 : 레인저스 유스 아카데미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이자 두 번에 걸쳐 주장을 역임한 미드필더.
  9. 앤디 고람 : ‘골리’. ‘9년 연속 우승’의 수호신이었던, 레인저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키퍼.
  10. 폴 개스코인 : ‘개자’. 짧은 기간이었지만 스코틀랜드 축구계를 뒤흔든 잉글랜드의 축구 천재.

최종 휘슬: 종합 비교 및 결론

트로피 캐비닛: 영광의 무게

대회셀틱레인저스
스코티시 리그55회55회
스코티시컵42회34회
스코티시 리그컵22회28회
유러피언컵 / 챔피언스리그1회 (1967)0회
UEFA 컵 위너스컵0회1회 (1972)
주요 트로피 총계120개118개

2012년의 그림자: 레인저스의 청산과 부활

2012년 레인저스의 재정 파탄과 법인 청산 사태는 라이벌리에 새로운 불씨를 던졌습니다. 4부 리그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2020-21 시즌 10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린 이 고난과 극복의 서사는 레인저스의 현대적 정체성에 불굴의 이미지를 더했습니다.


결론: 서로를 정의하는 영원한 라이벌

셀틱이 자선과 이민자들의 정체성에서 시작하여 포용과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면, 레인저스는 순수한 스포츠에 대한 열정에서 출발하여 스코틀랜드의 주류적 가치와 연방주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느 클럽이 더 위대한가?’라는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두 거인이 없었다면 스코틀랜드 축구는 지금처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증오하지만, 역설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완성합니다. 올드 펌은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라, 글래스고라는 도시의 심장을 뛰게 하고, 스코틀랜드 사회의 복잡한 역사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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