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글랜드 축구의 GOAT는?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노스웨스트 더비(North-West Derby)’만큼 묵직한 울림을 주는 단어는 없습니다. 리버풀 FC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맞대결은 단순한 축구 경기를 초월합니다. 이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두 클럽의 자존심 대결이자, 산업혁명의 유산을 공유하는 두 도시의 문화적 충돌이며, 영광과 비극으로 점철된 두 거인의 서사가 교차하는 숙명의 장입니다.
본 포스트는 2025년 현재를 기준으로, 두 클럽의 일시적인 성적을 넘어 라이벌리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적, 문화적 토대를 깊이 파고들 것입니다. 두 도시의 경쟁 관계, 클럽의 영혼을 빚어낸 비극, 그리고 ‘리버풀 웨이’와 ‘유나이티드 웨이’를 구축한 전설적인 감독들과 불멸의 레전드들을 심층적으로 조명하고자 합니다.
1. 두 도시 이야기: 라이벌리의 기원
산업혁명의 심장부: 맨체스터와 리버풀의 경쟁
두 클럽의 라이벌리는 축구가 존재하기 훨씬 이전인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당시 세계적인 항구 도시였던 리버풀과 면화 방직 산업의 중심지였던 맨체스터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이 공생 관계는 1894년 ‘맨체스터 운하(Manchester Ship Canal)’의 개통으로 돌이킬 수 없이 틀어졌습니다. 맨체스터의 상인들은 리버풀 항구를 거치지 않고 내륙까지 대형 선박이 직접 들어올 수 있는 운하를 건설했습니다. 이는 맨체스터의 경제적 독립 선언이자 리버풀의 경제적 지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 두 도시 사이에 깊은 증오와 경쟁심을 심었습니다.
축구 거인의 탄생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878년, 철도 회사 노동자들이 창단한 ‘뉴턴 히스 LYR FC’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형적인 노동자 팀으로 출발하여 파산 위기를 겪은 후, 1902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 리버풀 FC: 오늘날 리버풀의 성지인 안필드는 원래 라이벌 에버턴의 홈구장이었습니다. 1892년, 경기장 소유주였던 존 홀딩과 에버턴 이사회의 임대료 분쟁 끝에 에버턴이 떠나자, 홀딩이 텅 빈 경기장에서 뛸 새로운 팀으로 창단했습니다.
2. 비극이 새긴 클럽의 영혼
뮌헨의 꽃: 뮌헨 비행기 참사 (1958)
1958년 2월 6일, ‘버스비의 아이들’이라 불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젊은 선수단을 태운 비행기가 뮌헨에서 추락했습니다. 이 참사로 던컨 에드워즈를 포함한 8명의 선수가 사망하며 ‘뮌헨의 꽃’이라 불리던 한 세대가 스러졌습니다.
이 비극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단순한 축구 클럽을 넘어,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1968년, 맷 버스비 감독은 생존자들과 새로운 스타들을 이끌고 마침내 유러피언컵 정상에 오르며 뮌헨에서 희생된 동료들의 영전에 트로피를 바쳤습니다.
97명을 위한 정의: 힐즈버러 참사 (1989)
1989년 4월 15일, 힐즈버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FA컵 준결승전에서 압사 사고로 97명의 리버풀 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참사 이후 경찰과 일부 언론은 원인을 팬들의 탓으로 돌리며 진실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힐즈버러 유가족 지원 그룹’을 중심으로 한 수십 년간의 끈질긴 투쟁 끝에, 2016년 법원은 참사의 원인이 경찰의 과실이었음을 인정했습니다. 이 길고 험난했던 투쟁의 과정에서 클럽의 응원가인 “You’ll Never Walk Alone”은 단순한 노래를 넘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연대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3. 제국의 건설자들: 전설적인 감독들
리버풀 웨이: 샹클리, 페이즐리, 그리고 부트룸
1959년 부임한 빌 샹클리 감독은 ‘패스 앤 무브’ 철학을 주입하고, 코치진의 집단 지성 공간인 ‘부트룸(Boot Room)’을 창설하며 리버풀 황금기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밥 페이즐리는 9시즌 동안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하며 ‘리버풀 웨이’가 한 명의 천재가 아닌, 시스템과 연속성의 힘임을 증명했습니다.
유나이티드 웨이: 버스비, 퍼거슨, 그리고 영광을 향한 집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사는 맷 버스비와 알렉스 퍼거슨이라는 두 명의 위대한 스코틀랜드 감독으로 요약됩니다. 버스비가 뮌헨의 비극을 딛고 유럽 정상에 오르는 재기의 서사를 썼다면, 퍼거슨은 26년간 13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2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해 총 38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유나이티드 웨이’를 ‘승리’와 동의어로 만들었습니다.
4. 판테온: 클럽을 정의한 10인의 레전드
리버풀의 판테온
- 케니 달글리시 : ‘킹 케니’. 선수로서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유러피언컵을, 선수 겸 감독으로서 리그와 FA컵 더블을 달성한 리버풀의 영원한 왕.
- 스티븐 제라드 : 리버풀 유스 출신 ‘원클럽맨’. 암흑기에 홀로 팀을 이끈 영웅이자 2005년 이스탄불의 기적을 만든 캡틴.
- 이언 러시 : 클럽 역대 최다 득점자 (346골). 1980년대 리버풀 지배의 마침표를 찍은 골무원.
- 그레이엄 수네스 : 강철 같은 투지와 우아한 기술을 겸비한 1980년대 중원의 야전사령관.
- 존 반스 : 인종차별의 장벽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허문 선구자이자, 예술의 경지에 가까웠던 윙어.
- 빌리 리델 : 2차 세계대전 직후, 팀의 암흑기를 홀로 지탱한 충성심의 화신. 당시 리버풀은 ‘리델풀’이라 불릴 정도.
- 앨런 한센 : ‘우아한 수비수’의 대명사. 리버풀의 ‘볼 플레잉 디펜더’ 전통의 시초.
- 제이미 캐러거 : ‘리버풀 정신’ 그 자체. 리버풀의 팬이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과 같았던 헌신의 아이콘.
- 로저 헌트 : 샹클리 혁명의 선봉장이자, 잉글랜드의 1966년 월드컵 우승 주역.
- 케빈 키건 : 1970년대 잉글랜드 축구의 슈퍼스타. 클럽 최초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이끎.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판테온
- 바비 찰튼 경 : 뮌헨 참사의 생존자이자 클럽 재건의 상징. 1966년 월드컵 우승과 발롱도르를 수상한 잉글랜드 축구의 신사.
- 조지 베스트 : 최초의 ‘축구 슈퍼스타’이자 ‘5번째 비틀즈’.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천재성의 화신.
- 데니스 로 : ‘유나이티드 신성 삼위일체’의 일원. 스코틀랜드 유일의 발롱도르 수상자.
- 라이언 긱스 : 클럽 역대 최다 출장(963경기) 및 프리미어리그 최다 우승(13회) 기록 보유자.
- 폴 스콜스 : ‘조용한 천재’. 지단과 사비가 인정한 세기의 미드필더.
- 에릭 칸토나 : 클럽의 역사를 바꾼 ‘촉매제’. 팬들에게 ‘킹 에릭’이라 불리며 숭배받았던 카리스마의 아이콘.
- 로이 킨 : 불같은 리더십으로 1999년 트레블을 이끈 위대한 캡틴. ‘위닝 멘탈리티’의 화신.
- 웨인 루니 : 클럽 역대 최다 득점자(253골). 유나이티드 마지막 황금기를 상징하는 공격수.
- 피터 슈마이켈 : ‘위대한 덴마크인’. 현대 골키퍼의 개념을 바꾼 혁명가.
- 브라이언 롭슨 : ‘캡틴 마블’. 암흑기 시절 팀을 홀로 이끌었던 불굴의 전사.
최종 휘슬: 종합 비교 및 결론
트로피 캐비닛: 영광의 기록
대회 | 리버풀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리그 우승 (1부) | 20회 | 20회 |
FA컵 | 8회 | 13회 |
리그컵 | 10회 | 6회 |
유러피언컵 / 챔피언스리그 | 6회 | 3회 |
주요 대회 총계 | 69개 | 68개 |
결론: 끝나지 않는 라이벌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노동자들의 팀에서 시작해 비극을 딛고 퍼거슨이라는 절대적인 리더 아래 ‘영광’의 제국을 건설했다면, 리버풀은 비즈니스 분쟁 속에서 탄생하여 ‘부트룸’이라는 집단지성 시스템을 통해 ‘연대’의 왕조를 구축했습니다.
한쪽이 ‘Glory, Glory’를 외치며 승리를 과시할 때, 다른 한쪽은 ‘You’ll Never Walk Alone’을 부르며 아픔을 보듬고 함께 나아갑니다.
결국 ‘어느 클럽이 더 위대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내려지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들의 라이벌리가 단순한 축구 경기를 넘어 두 도시의 자존심, 두 클럽의 역사, 그리고 수많은 팬들의 삶이 녹아있는 거대한 서사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서사는 앞으로도 잉글랜드 축구의 가장 뜨거운 무대에서 계속해서 쓰여질 것입니다.